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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된 당신이 피아노를 못 치게 된 이유

뭔가 배워보고 싶은데 딱히 떠오르는 게 없거나 심심하신 분이 있으면 음악을 후보에 올려보길 추천한다. 특히 이미 만들어진 음악을 소비(청음)하기보다는 악기 연주나 보컬 레슨, 작곡 등 적극적인 생산을 해보길 권한다.
이유는. 음. 해보면 안다. 감성, 표현, 릴렉스, 작은 성취 기타 등등 왜 좋은 지야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보셨을 거라 설명이 큰 소용이 될까 싶다. 다만 잘하지도 못하는 악기 연주, 노래도 뻔뻔하게 올릴 수 있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관해서는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때는 바야흐로 30여 년 전. 김선미가 유치원에 다닐 무렵은 피아노 학원이 열풍이었다. 그래서 내 또래 친구들은 꽤 많은 수가 건반을 누르면 어떤 소리가 나는지 알 거다. 하지만 지금에 와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냐 물으면 ‘어릴 때 피아노를 배웠지만, 지금은 칠 줄 모른다.’ 답할 확률이 높다.
여러분. 악기 연주는 섬세한 작업이라 쉽게 녹슬지만 결국 몸을 쓰는 거기도 해서 녹을 털어내면 금세 회복할 수 있습니다. 자전거 타기처럼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렇게 된 데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꽤 많은 예체능 교육이 초등학교 고학년 ~ 중학교 입학 시기에 중단된다. 본격적인 입시 교육이 시작되기 때문인데 안타깝게도 진정으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시기 역시 이때부터다.
초등학교 입학 전후에 피아노 학원 문턱을 넘은 보통 실력의 어린이는 1-1.5 년에 한 권 정도의 책을 떼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이엘 상/하, 체르니 100, 30, 40 등등. 셈이 빠른 분은 눈치채셨겠지만, 체르니 30 정도면 초등학교 졸업 시기가 되는 것. 그래서 여러분 다수가 체르니 3,40 이후로 기억이 없는 것입니다. 체르니 40쯤을 지날 때가 되어야 교양처럼 전해지는 작곡가의 이름을 만날 수 있다. 쇼팽, 슈베르트,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등등. 그러니까 이제 어디서 들어본 악보를 드디어 연주해볼 수 있으려나 할 때쯤 입시 준비로 인해 음악 교육이 중단되는 것이다. 손가락을 독립적으로 움직이기 위한 연습만 5-6년 하다가 써보지도 못한 채 말이다.
이 시기 이후에는 콩나물 대가리를 어느 정도 자유롭게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악상도 살릴 수 있고, 나만의 음악성을 부여할 수도 있다. 물론 평생 배워도 피아니스트처럼 연주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지만, 우리가 언어나 관계로 해소할 수 없는 것들을 예술은 표현하고 해소할 수 있게 돕는다. 입시 준비가 잘 안 될 때 해소구가 되어줄 수도 있다.
피아니스트. 이게 또 음악을 우리와 멀어지게 한 주범이다. 클래식 음악을 귀족들만 라이브로 들을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현대의 우리는 양질의 음악을 일상적으로 쉽게 소비할 수 있다. 그것도 무료로. 하지만 불행히도 몇 년간 한 곡만 연습해도 평소 듣던 연주자의 퀄리티에 한참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문명의 이기 덕에 역설적으로 이 사실을 의식적으로 상기하지 않으면 좌절하기 쉽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연주는 음. 직업인, 즉 프로의 연주다. 직업인 중에서도 천재적인 직업인. 그러니까 직업인의 세계로 치면 글로벌 기업의 CEO랄까. 우리가 일을 평생 줠라 열심히 한다고 모두 글로벌 기업의 CEO가 될 수는 없지 않나. 어릴 때부터 음악의 끈을 놓지 않은 운 좋은 사람은 일찌감치 이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욕심 없이 구린 실력으로도 오래 악기 연주를 즐길 수 있다. 좋은 가락을 뽑아내는 것 말고도 음악이 주는 기쁨이 많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제3의 언어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내가 이상한 음악생활도 개의치 않고 공개할 수 있는 이유는 전문가 아니고서야 대부분은 나처럼 보통으로 못 할 것이고, 그래도 즐겁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두 함께 낮은 수준으로 음악 하며 높은 만족감으로 즐거워봅시다.
P.S.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생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는 적당히 즐기고 싶은데 우리 바이올린 레슨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사건이 생겨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