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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이 아름다울 때, 나는 울어요

자주 운다. 기쁠 때도 울고, 슬플 때도 울고, 고마울 때에도, 억울할 때에도, 책을 보면서, 영화를 보면서, 미술관의 액자 앞에서, 기회만 있으면 성실하게. 우환이 있는 사람처럼 엉엉 울어댄다. 쓸 수 있는 언어가 남아있지 않은 사람은 목에 걸리는 자음과 모음을 엮어내지 못하고 눈으로 뽑아낼 수밖에 없다. 그럴 때면 눈알에서 하고 싶은 말들이 쏟아져 내린다.
이렇게 안구를 헹구고 나면 개운한 기분에 더불어 약간의 수치심이 뒤통수를 갈긴다.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게는 선물을 안 준다는 가사를 평생 들었기 때문인 것도 같고, 눈물을 뚝뚝 떨굴 때마다 뚝! 그치라는 어른들의 채근을 먹고 자랐기 때문인 것도 같고. 아무튼 누구 하나 없이 혼자 울 때도 묘하게 부끄럽다.
하려던 말이 분명 있었는데 눈물이 제 순서도 모르고 먼저 치고 나오는 바람에 준비했던 대사를 못 읊을 땐 나 자신이 지독하게 한심하다. 자주 운다고 했으니 이런 복잡한 감정을 종종 겪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간혹 사람을 면전에 두고 장기를 펼칠 때도 있다. 그럴 땐 나만큼이나 상대방도 난처해진다. 내가 감정 기복이 크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아는 데는 몇 마디의 말도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너가 지금 왜 이 타이밍에. 역시 우환이 있는 게로구나!
그제 울었다. 학교 동기들과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라는 책을 읽고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친구들은 책이 도무지 읽히지 않았고 재미도 없었다고 했다. 미지근한 반응에 제가 쓴 책도 아니면서 반사적으로 변호를 하기 시작했다. 전날,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속으로 별 세 개를 줬다. 그러니까 별 다섯 개도 안 줬으면서 책의 좋은 부분들을 침 튀기며 옹호하던 참이었다. 그때 망할 놈의 눈물이 말을 끊고 끼어들었다. 나 말 하잖아. 새끼야.
전날 밤, 이미 여러 차례 운 상태였다. 책을 몇 번이고 덮었다 열었다 혼자 침대 위에서 누워 찔찔 짜면서 난리 블루스를 추다가 겨우겨우 마무리했었다. 마구잡이로 울어댄 책에 시큰둥하게 반응하면 속이 상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책은 국내의 어느 대학에서 학사, 석사, 박사를 모두 마치고 학문을 이어가는 한 사람의 담담한 이야기였다. 여성이자 아이의 엄마이자 천문학을 연구하는 학자이기도 한 그의 글은 하나의 공부를 오래오래 하는 사람들이 늘 그렇듯이 조금은 심심하고, 고요하고, 아득했다. 과학 하는 사람의 글이 늘 그렇듯이 수식이 적고, 투박했다.
돌이켜보니 책은 별 내용이 없었다. 위인전에 나올 것 같은 비범한 계기 없이 전공을 선택하고 학교를 떠나지 못해 남기로 선택한 과정이 쓰여있었다. 출제자도 나이고, 시험자도 나인 우리 인생 같은 박사 연구 과정이 담겨있었고, 시시때때로 치고 들어오는 자기 의심과 불안, 그 와중에 원하는 실험 결과가 나왔을 때 잠깐 오는 짜릿함 같은 게 적혀있었다. 세상이 모두 잠든 시간에 혼자 실험실에서 발광하는 모니터를 보면서 한참 생각하다가 조건을 바꾸어 시뮬레이션을 몇 개 돌리다 보니 해가 밝아오는 그런 이야기. 디테일은 다르지만 내가 했던 삽질과 혼란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서 그의 삶이 세세하게 느껴져 가슴이 진공상태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게 그렇게 울 일인가.
사실 어제도 울었다. 연희 씨들과 <앙드레 브라질리에> 전시를 보러 연남동에서 한강을 가로질러 서초동 까지 간 날이었다. 전시에 집중할 생각은 없었다. 연희 씨들이 어떻게 전시를 돌아볼까 운전하는 내내 그것만 궁금해하면서 악셀과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았으니까. 하지만 시각과 청각은 우리의 사고를 흐리게 하고, 조명 아래에 걸린 그림과 형태도 없이 전시장을 채우는 음악은 금세 주의를 사로잡았다. 작품은 음악과 서커스로 시작해 하얀 벽을 끼고 돌 때마다 봄, 여름, 가을을 지나고 있었다. 그렇게 겨울이 오고 나는 결국 또 울고 말았다. 눈앞에는 하얀 눈송이가 흩뿌려진 캔버스 위에 말 다섯 마리가 기수를 등에 태우고 뽀드득과 저벅거리는 소리를 번갈아 내면서 숲속을 살폈다. 겨울 숲에는 앙상한 나뭇가지마다 가을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자연을 사랑하는 이 작가의 그림에는 그 어떤 우울도 깃들지 않고 다채로운 색으로 자연을 찬양한다는 전시 해설이 무색하게 전시장 속 나는 누가 봐도 우울한 사람이었다.
“강렬한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미친 듯이 사랑해야 합니다.” André Brasilier
첫 눈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그림 앞에 서 있을 때 미술관은 리스트의 사랑의 꿈(Liszt - Liebestraum)을 골라 틀어줬다.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는 부제를 단, 리스트의 곡 중 가장 쉽고(치기 쉽다고는 안 했다.), 느리고, 서정적인 곡이다. 그가 표현한 자연의 찬란함에 못 이겨 울어버렸으니 삶과 자연을 향한 화가의 미친 듯한 사랑으로 비롯해 내게도 강렬한 감정이 와 버린 것이리라.
그러니까 무언가를 향한, 이해하기 어려운 크기의 사랑은 우리를 눈물짓게 하는 것이다.
오랜만의 나들이라며 들떠있는 연희 씨의 어깨가 총총 걸어간다.
André Brasilier (1929 ~) Les premieres neiges, 첫눈 (2012)